우리나라의 산 줄기와 산의 갈레, 산의 위치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나타낸 조선(朝鮮)시대 지리서(地理書)인 ≪산경표(山經表)≫에 의하면 백두산을 출발점으로 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큰 산줄기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조선의 산 줄기를 1개의 대간(大幹), 1개의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으로 분류하였다.
백두대간의 줄기인 낙동정맥(洛東正脈)은 태백산(太白山)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수계(水系)를 기준으로 강 동쪽에 있는 산줄기이다.
부산의 서북지역인 우리 고장의 산세는 낙동정맥의 줄기인 금정산맥(金井山脈)에 속해 있다. 고당봉을 주봉으로 하는 금정산은 금곡동∼화명동쪽으로 장골봉(長谷峰) 긴 능선이 펼쳐진다.
그리고 지형적으로 학(鶴)이 양날개를 펼치고 있는 형상을 한 상학산(上鶴山)을 중심으로 화명쪽으로 화산(華山)이 솟아있고 만덕쪽으로 병풍암과 만덕고개로 이어진다. 또 하나 구포에는 백양산(白楊山)의 줄기인 주지봉(蛛蜘峰)이 주산(主山)으로 솟아있다.
(1) 금정산 (金井山 802m)
금정산은 부산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이다.
부산의 산세는 금정산에서 출발하여 뻗어 나가고 있다.
금정산 산 이름의 유래는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나오는 금샘(金井)설화에서 유래한다.
기록에 의하면 “금정산은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데 산정(山頂)에 돌이 있어 높이가 3장(丈) 가량이다. 그 위에 샘이 있는데 둘레가 10여척(尺)이고 깊이는 7촌(寸)가량으로 물이 늘 차 있어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색이 황금과 같다. 세상에 전하기를 한 금빛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으므로 산 이름을 금정산(金井山)으로 하였다”고 나와 있다.
금정산은 주봉인 고당봉(姑堂峰)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장군봉(將軍峰), 동으로는 계명봉(鷄鳴峰), 서쪽으로 장골봉(長谷峰), 남쪽으로 상학산(上鶴山) 등 많은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금정산의 산간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 능선에는 사적(史蹟) 제215호로 지정된 국내 산성(山城)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곽인 금정산성이 있다.
그 둘레는 약 17㎞, 높이 1.5∼6.0m이고 동·서·남·북 4방에 4개의 성문을 갖추고 있으며 망루도 6개소가 있다.
우리 고장과 연접해 있는 성문은 서문(西門)과 남문(南門)이다.
(2) 장골봉 (長谷峰, 494m)
금정산에서 지역 주민들이 예로 부터 널리 불러오던 봉우리 중에 장골봉(長谷峰)이 있다.
고당봉에서 산성 성곽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 오면 숲 사이로 기암괴석(奇岩怪石)들이 줄
줄이 들어서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게 된다. 이 봉우리에서 산성은 절벽을 타고 바위들 사이로 곡예를 하듯 사
시골 골짜기 쪽으로 뻗어 내린다. 이처럼 오묘한 지형을 갖춘 봉우리가 장골봉이다.
장골봉 정상의 성곽과 이어지는 곳에는 건물을 지었던 터가 남아 있고 석문(石門) 하나가 홀로 외로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학계 전문가들이 이곳 일대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석문 근처에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을 것으로 보고 이 건물의 용도는 망루 또는 장대(將臺)로 사용 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석문과 건물터를 볼 때 조선시대 일반적인 성을 쌓는 양식과는 다른 특이한 모양을 나타내고
있어 금정산성이 신라시대에 이미 축성 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1872년에 제작된 금정산성진(井山城鎭) 지도에 산성의 12개 망대(망루) 중에서 장골봉 쪽으로도
1개가 나타나 있는 것을 볼 때 이곳이 망루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처럼 역사적 내력이 담긴 장골봉(長谷峰)은 글자 뜻대로 금정산에서 제일 긴(長) 골짜기(谷)를 끼
고 있는 봉우리요, 가장 으뜸가는 (長) 골짜기인 사시골을 끼고 있는 봉우리인 것이다.
장골봉을 지역 주민들은 예로부터 장골뱅이라고 불러왔는데 이 산골의 능선을 따라 금정산성의 성안과 성밖이 구분되고 있다.
(3) 상학산 (上鶴山, 638m)
금정산과 함께 지도에 공식적으로 나타나 있는 산으로 상학산(上鶴山)이 있다. 예로부터 대천(大川) 계곡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금정산(고당봉)이 있고 남쪽으로 상학산(상계봉)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금정산과 함께 상학산은 지역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 일찍부터 그 이름이 전해오고 있다. 깎아 지른듯한 수십길의 직벽과 기암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상학산의 주봉(主峰)을 상계봉(上鷄峰)으로 부르고 있다.
상계봉이란 이름은 산정(山頂)에 있는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닭의 볏을 닮았다는데 유래하고 있으며, 이 봉우리가 부근에서 가장 높아 새벽이 다른 곳보다 먼저 밝아온다는 뜻으로 상계봉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봉우리 자체를 두고 평가한 것이지만 예로부터 불러오던 이름인 상학산은 풍수지리상 학(鶴)의 형상에서 유래하고 있다.
지역 고로(古老)들의 이야기로는 상학산은 쌍학산으로서 학이 양 날개를 편듯 좌우로 봉우리가 뻗어내리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풀이하고 있다.
상학산은 학의 근본이 되는 산으로 양쪽 날개인 좌우 봉우리를 살펴 보면 화명쪽으로 화산(華山) 암봉이 뻗어있고 만덕쪽으로 마애석불(磨崖石佛)로 유명한 병풍암 능선으로 뻗어 내리고 있어 풍수지리상 명산으로 꼽히는 산이다.
이 상학산의 학의 머리 부분은 화명 수정마을의 강변쪽 학사대(學士臺)가 있는 학성산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4) 화산 (華山 542m)
상학산(上鶴山)의 양쪽 날개 중 화명의 북쪽 끝 봉우리를 화산(華山)이라고 부르는데 봉우리 아래 가파르고 유수한 충적암 암벽이 둘러쌓여 있다.
이곳의 상봉에는 신선덤(神仙岩)이라는 가파른 암벽이 있는데 동북쪽의 물태전골에는 항상 상봉에서 암벽을 타고 물기가 섞어 내려 석양이 질 무렵에는 햇빛이 비치어 번쩍이며 겨울철에는 빙판(氷板)이 져 있다.
신선덤이 있는 곳에 장군맥이 뻗었다는 장사바위가 있으며 산 아래 대밭골에는 옛날 금정산에서 유일하게 마을의 지킴이 호랑이가 살면서 외부에서 쳐들어 오는 난달호랑이와 싸웠다는 호투장(虎鬪場)의 전설이 전해 올 만큼 화산은 산세와 능선 골짜기가 오묘한 절경을 갖추고 있다.
화명(華明)이란 지명도 이곳 화산 아래 명당(明堂)이란 뜻에서 유래한다.
(5) 함박봉 (357m)
화명동 수정마을의 동산(洞山)으로 함박꽃처럼 생긴 봉우리이다.
상학산에서 큰골 작은 골은 거쳐 별도의 봉우리가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처럼 불룩 솟아 있다. 이곳에는 돌무더기가 채이처럼 생긴 채이들겅 너덜지대가 있고 현재의 수정마을 뒤편 동쪽에는 옛날 동네자리였던 동두밭이 있다.
함박봉 정상에는 6·25이후 군 부대가 있다가 철수했고 지금은 헬기 착륙장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남쪽 정상 입구쪽에는 제단(祭壇)처럼 생긴 바위들이 있다. 함박봉 아래 옹달샘에서 수정천 물이 흘러내리고 있으며 대장골의 약수터가 있는 작은 산 봉우리의 흰돌백이 능선과 꿀적골 골짜기에서 빗살무늬토기들이 발견되고 있어 신석기부터 청동기까지의 옛 무덤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6) 백양산 (白楊山 642m)
백양산은 금정산에서 상학산을 거쳐 남쪽 사상지역으로 이어지는 산이다. 이 산의 이름은 신라시대 고찰(古刹)이었던 백양사(白楊寺)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조선시대 지도에는 선암산(仙巖山)으로 나타나 있다.
선암산이란 이름도 산의 동쪽 줄기 아래 선암사라는 사찰이 있기 때문이며 서쪽 줄기인 모라쪽에 운수사가 있으므로 운수산(雲水山)이란 이름으로 기록에 나온다.
백양산은 거대한 화강암이 이 산 표면에 나타나 있고 산지는 뽀족한 봉우리가 많지만 산 정상 부분을 제외하고는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있다.
만덕고개에서 산 능선을 타고 남서쪽으로 나오면 옛날 만덕고개에서 초읍으로 넘어가던 부태고개가 있고 다시 산을 오르면 구포 시랑골을 끼고 옛날 화랑들이 찾아와 훈련했다는 600m 고지의 능선에 평지가 펼쳐지고 산 정상부에 전설의 낭(郎)바위가 있다.
(7) 주지봉 (蛛蜘峰 614m)
금정산과 상학산의 산 줄기가 만덕고개와 부태고개 능선을 따라올라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구포쪽으로 뻗어 나와 우뚝 솟아 있는 산 봉우리가 주지봉(蛛蜘峰)이다.
이 산의 최고 높은 봉우리인 암벽의 형상이 마치 거미가 웅크린 모습이라서 주지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주지봉은 만덕과 덕천, 그리고 구포의 시랑골과 음정골 등 산 아래 동서남북으로 마을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구포지역의 주산(主山)이 되어왔다.
시랑골 쪽 산의 8부 능선 금샘이 샘터 주변 일대에는 지난 날 온돌방 주거시설에 필요했던 구들돌이 생산되어 8·15 광복 이후 1960년대까지 산 정상부위에 화물차가 오르내렸다.
주지봉 아래 말등고개를 거쳐 남서쪽으로 대리마을이 있고 이곳에는 500여년의 수령(樹齡)을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팽나무와 그 옆쪽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 민속신앙의 상징적 존재로 보존되어 오고 있다.
(8) 범방산 (泛舫山 271m)
구포의 서쪽 구남마을에서 모라까지 길게 뻗어내린 산이 범방산(泛舫山)이다. 이 산을 멀리서 바라다 보면 거북이가 강을 향하여 옆드려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구포사람들은 범방산을 거북산이라고 부른다.
모라에서 구포로 이어지는 산 능선이 거북이의 몸통이고, 그 산 줄기가 시랑골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낮아졌다가 구포초등학교 뒤쪽으로 또 하나의 작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데 꼭 거북이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범방산의 최고봉에는 거북이가 산을 향하여 목을 내밀고 있는 듯한 바위가 선명하게 쳐다보여 구포의 상징물이 되고있다.
이곳에는 화강암으로 된 범바위, 멧돌바위 여근바위 등 온갖 형상의 바위들이 늘어서 있는데 범방산이란 이름은 호암골(虎巖谷)에 있는 범바위에서 따온 것으로 이야기하기도 하나 범방산의 글자를 풀이하면‘뜰 범(汎)’ ‘배 방(舫)’으로서 배가 정박했다가 뜬다는 뜻이 담겨 있다. 범방산에서 서쪽으로 흘러 내리는 개울물을 경계로 조선시대 동래부와 양산군 갈라져 있었다 지금도 북구청 바로 아래쪽 철로 굴다리를 경계로 북구 구포동과 사상구 모라동이 대치하고 있는데 이곳의 모라쪽에 조선시대 역원시설인 사천원(沙川院) 수참(水站)이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구포의 감동진(甘同津)과 함께 두곳에 큰 나루터를 끼고 배가 드나들던 곳의 배산(背山)으로서 범방산의 지명이 생겨난 것으로 역사적인 사실이 증명해 주고 있다
(9) 동별 산(山) 이름
우리 고장의 대표적인 산(山) 이외에 동네마다 작은 봉우리의 산들이 펼쳐져 있다.
구포동의 시랑골 말등고개가 있는 곳을 영산(嶺山), 비학산(飛鶴山)이라하는데 산의 모양이 말등이나 소 질매처럼 솟아있다. 시랑골에는 구들돌이 많이나는 구들산, 자갈돌이 많은 종발산, 화강암이 많이 있는 돌산 등 산 이름이 많다.
화명동 화잠마을에는 옛날 서당에서 관리하던 서당산, 두레 모임에서 소유한 농천산이 있다.
수정마을의 앞산은 가야고분이 발굴되고 돌 도끼가 습득된 곳이며 조대(釣臺)가 있는 산은 안산(鞍山), 산 중턱에 조개껍질이 발견되는 돌곶이 산, 나팔처럼 생긴 나팔산이 있다.
수정동네 뒤쪽 야산은 뒷산, 용당마을 입구의 수정 끝에 있는 학성산은 학사대(學士臺)가 있는 곳으로 풍수지리상 상학산의 머리에 해당되는 명산이다.
덕천동에는 숙등마을 뒤에 돌산이 있는데 학생들이 나무 심고 송충이 잡으러 다녔다고 학교산이라하며 남산정마을의 북쪽 뒷산은 평평하다고 평면산이라고 한다.
의성성터가 있는 곳은 성터 이름 그대로 의성산(義城山)이다.
만덕동 쪽에는 만덕사 절터를 중심으로 서쪽 강변을 가로 막고 있는 용을산(龍乙山)이 있는데 풍수지리상 좌청룡(左靑龍)에 해당되는 산이다.
만덕사의 안산(案山)은 비룡산(飛龍山)이며 만덕고갯길 동북쪽에 마애석불(磨涯石佛)로 이름난 병풍바위산이 있다.
만덕사 안산을 지나 불태령(佛態嶺)으로 오르는 곳에 함박산이 있고 사직동 쪽으로 쇠미산(金湧山)이 있다. 그리고 만덕 하리 입구 쪽에는 동백산이라는 야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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